
영장류학자인 저자는 부제대로 영장류학자의 관점으로 젠더 차이를 보여준다. 사회학적 분석을 하는 책이 아니다. 우선 이 점을 참고하고 읽기 바란다.
어느 나라에서나 성별 갈등은 존재하고,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은 시간대는 없다. 그러나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남녀 갈등이 한국 사회 전체의 갈등 이슈로 대두되었다. 어떤 주장을 펼치는 쪽이건 자연과학을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려 한다. 나도 사실 마찬가지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물학적으로, 영장류학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형성됐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있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회과학적으로 패턴을 형성하게 될 만큼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했고 그러한 고착화가 다시 사회적 배경이 되어 또 다른 성차별을 야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젠더 문제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게 답이 나는 이슈가 아니었다. 명확히 떨어지는 답을 기대했다 보니 저자의 주장이 모호하게 느껴져서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책은 우리 마음의 이분법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보라고 말한다.
동물 연구를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항상 인간의 고귀함을 내세우는 상대측 진영으로부터
인간 문화의 영향을 간과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남녀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가부장제는 우리의 동물 조상이 남긴 유산일까? 남성의 공격성은 극복할 수 없는 본능의 문제일까?
침팬지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의 조상은 살육자들이었을까?
여러 우려들은 프란스 드 발의 시도가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으로 끝맺을 것이 분명하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프란스 드 발은 이러한 우려와 의구심 속에서 오히려 문제를 정면 돌파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또다시 명쾌하게 제시한다.
요컨대,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에 관한 책이다.
…
이 책의 저자 프란스 드 발은 그동안 생물학이 해온 실수들로 인해 형성된
우리의 잘못된 통념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프란스 드 발은 이 책의 서문에서
“동물과 사람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성차는 사람의 젠더에 관한 거의 모든 논쟁에서
그 중심에 있는 모든 질문들을 제기한다”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간주한다.
그는 남녀 관계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가정들
- 폭력, 권위, 경쟁, 성차, 믿음, 협력, 유대 등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제1장 장난감 ;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그리고 다른 영장류의 놀이 방식
수컷, 남자 아이들은 싸움 놀이를 통해 힘을 자제하는 능력을 배운다. 암컷, 여자 아이들의 놀이는 보살핌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것을 모성이라는 본능으로 정리할 순 없다. 다른 영장류를 관찰해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식. 젠더 별 장난감 선호에 대한 성차는 생물학적 기원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중립적 장난감을 아이에게 제공하여 아이를 성중립적으로, 혹은 아이가 스스로의 젠더를 선택하도록 유도할 필요 없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선호 장난감 유형에 따라 아이를 정의 내릴 수도 없다. 아이들 놀이의 상당 부분은 장난감이나 젠더와는 관계없이 다양하다. 지엽적 시각으로 장난감에 집착 말고 뒤로 물러나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놀도록 내버려 두라. 장난감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용 옷에 아직도 호주머니가 달려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제2장 젠더 ; 정체성과 자기 사회화
생물학적 성과 구별되는 젠더. 미국인 심리학자 머니의 ‘데이비드 라이머 사건’ (포경수술 실패로 음경의 거의 다 잃은 캐나다 남자아이의 부모를 설득하여 아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성전환시켜 본래의 성별도 모른 채 키워진 사건, 브루스에서 브렌다가 된 아이의 성장과정을 추적한 머니는 완전한 성공이라 주장하며 젠더는 순전히 양육에 달린 문제라고 선언했지만, 사실 아이는 자신의 새로운 젠더를 격렬하게 거부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고, 후에 본인의 원래 성별을 되찾았지만 결국 자살)을 통해 아이가 사회의 기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릇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제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젠더 정체성은 출생 이전에 형성되는 것으로 보이고 문화적 산물이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정체성 형성한다. 특정 젠더로 자기 사회화를 하는 것은 본성과 양육 중 한쪽을 선택하는 대신 양자를 결합하여 스스로 발달한다. ‘젠더 불평등’의 문제에서 문제는 젠더가 아니라 불평등. 젠더를 지우려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제3장 여섯 남자 아이 ; 네덜란드에서 여형제 없이 자란 경험
남성은 이성적,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믿음은 실체 없는 미신이다. 성 문화와 여성의 일자리, 생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불균형하게 발달되어 있는 각 국가들. 새로운 질서를 외치지만 그 질서에 젠더가 부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 행동을 문화적, 도덕적, 정치적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하지 않기가 힘들다. 내 머릿속에서 지시하는 소리를 끄고 실제 행동과 현실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제4장 잘못된 비유 ; 과장된 영장류의 가부장제
멍키힐의 오만한 실험으로 많은 원숭이들이 죽고, 수컷은 우월하고 폭력적이며 암컷은 수컷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 퍼졌다. 이것은 우리 종을 잔인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묘사하는 계기가 되었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등의 이야기 등장. 그러나 이것은 실제 현실이 아니다. 여성 영장류학자들의 등장으로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도 알게 되었고 젠더 균형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것은 계속 등장한다. 과학은 여전히 증거에 기반을 두어 입증 가능한 데이터와 통계 분석을 고수하기 때문에 과학을 하는 방식이 달라진 건 아니다. 이제 사회는 과거의 잘못되고 왜곡된 개념들과 결별하고 잘못된 견해들을 바로잡고 있다.
제5장 보노보의 자매애 ; 잊힌 유인원을 다시 찾아가다
과학계가 불편하게 여긴 보노보의 특성 ① 비폭력성 ② 성생활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친밀함과 유대 증진 목적의 동성 간 성행위, 잦은 성행위) ③ 양성 사이의 관계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
보노보는 번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유희로, 동성 간 유대감 증진을 위해 성관계를 하기도 한다. 양육자가 부재한 경우에는 서로 간의 성적 신호를 읽지 못해 학습해야 가능하기도 하다.
제6장 성적 신호 ; 성기에서 얼굴과 아름다움까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미신적인 쾌락의 원천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질 오르가즘. 프로이트가 음핵을 무시한 데에는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문화적 염려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삽입 강조는 여성을 통제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임신에는 암컷의 오르가즘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음핵은 어디에 소용이 있는 것일까? 음핵은 모든 포유류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성행위를 즐겁고 중독성이 강한 일로 만들기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암컷의 성적 모험주의
제7장 짝짓기 게임 ; 얌전한 암컷 미신
다윈은 성 선택 이론을 개발, 암컷의 선호. 자연의 화려한 색과 듣기 좋은 소리는 수컷의 행동과 장식과 무기에 대한 암컷의 선호 때문에 생겨났다는 이론인데, 당시엔 조롱당하고 부도덕하다고 평가받았다. 여성은 수동적 대상이라는 견해는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널리 퍼져 있다. 암컷의 섹슈얼리티는 비록 진화적 이유는 다르더라도 남성의 섹슈얼리티만큼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클론을 복제하는 무성 생식과는 다른 유성 생식. 유성 생식은 양 부모가 모두 생식에 기여하면서 새로운 세대마다 유전자 조합이 뒤섞이면서 변화하는 환경과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 유성 생식은 우리를 유전적으로 유연하게 만든다.
제8장 폭력 ; 강간, 살해, 전쟁의 개들
젠더 편향이 강한 한 가지 측면, 바로 물리적 폭력. 침팬지 사이의 강압적 교미는 극히 드물다. 불행하게도, 위에서 이야기한 어떤 사실도 우리 종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데, 우리 종에서는 친척 영장류에 비해 강간이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우리 종은 남성의 관여가 큰 특징인 가족 제도를 진화시켰다. 가족 제도가 주는 이점 대신 여성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강간을 포함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간이 우리 종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주장은 설득력 없고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
자신의 젠더에 맞는 감정적 기술과 태도를 습득하도록 해야 한다. 소년의 자제력과 명예심, 여성에 대한 존중을 남성다움의 핵심으로 취급해야 한다.
제9장 알파 수컷과 알파 암컷 ; 지배성과 권력의 차이
생물학적으로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수컷이 지배적인 역할을 맡는다. 다른 영장류에서 암컷의 권력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들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는 흔히 다른 종의 사회적 지배성을 물리적 지배성으로 축소 해석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가장 신체가 건장한 사람이 대표라고 확신하진 않으면서 다른 종에겐 그러한 논리 적용) 사회적 지배성을 따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폭군인 양 지배적인 수컷 영장류의 역할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두려움에 떨게 하는 수컷이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성별에 따른 전형적인 행동이 그들의 능력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각자 희귀한 상황에서 발현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남녀 모두를 하나의 틀에 통합하는 경향이 있다.
제10장 평화 유지 ; 동성 간 경쟁과 우정과 협력
남성의 선택적 관심은 여성보다는 다른 남성의 존재와 더 관련이 있을 때가 많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서로 어울리기 위하여 하는 수컷 바탕질. 여성도 서로를 주시한다. 모든 영장류에서 수컷은 주로 수컷과, 암컷은 주로 암컷과 경쟁한다. 그러나 동성 간의 상호 작용에서 얻는 것이 스트레스와 경쟁뿐인 것은 아니다. 동성끼리도 잘 어울린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나 양성이 친밀함을 나누는 주요 형식은 다르다. 동성은 경쟁자와 동시에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 종에서 고도로 발달한 네 가지 동성 간 경향은 남성 간 유대와 경쟁, 여성 간 유대와 경쟁인데 여성 간 경쟁은 너무나도 과소평가되고 무시된다. 여성은 착하고 평화로운 존재라는 착각은 무너지고 있다. 수컷은 갈등이 분출되었을 때 화해를 하는 데 능숙하고, 암컷은 갈등을 억제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데 능숙하다.
동성 간 협력을 이어온 우리의 오랜 진화사에도 불구하고, 혼성팀은 놀라울 정도로 잘 돌아간다. 우리 종의 행동 변화 잠재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남녀평등하게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변화가 시급하다.
제11장 양육 ; 어미와 아비의 양육 행동
모성이 본능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생물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동물의 친절이라는 기이한 행동이 새끼를 보살피는 행동에 그 뿌리가 있다. 수컷에게도 양육 잠재력이 있다. 수컷이 양육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회적 처리 방식은 가끔 그 배후에 있는 생물학보다 더 엄격하다. 생물학을 무시하는 것은 언제나 현명한 방법이 아니지만, 기존의 사회적 역할의 원인을 생물학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동물과 사람의 행동에 대한 현대 지식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연한 대응책을 시사한다.
제12장 동성 섹스 ; 무지개 깃발을 든 동물들
동성애 행위는 포유류의 기본적인 패턴으로 간주된다. 동성애가 자연의 법칙을 거역한다는 엉터리 주장이 틀렸음을 드러내는 데 도움. 생물학자 브루스 바게밀 “생식은 섹스의 많은 기능 중 하나일 뿐” 사람들은 항상 동물의 섹슈얼리티를 ‘번식 행동’이라고 부르면서 순전히 기능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섹스는 생식이 성공할 수 없는 조합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정자를 난자에 가까이 보낼 수 없는 형태로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이 동기의 자율성.
동성애는 이성애와 완전히 대비되는 특이, 혹은 이상 행동이 아니다.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구분 짓는 우리의 관점에서 비롯된 배척이며, 많은 영장류에서 동성끼리의 섹스 (사회적 교감 형식도 포함) 연대를 볼 수 있다. 이성 동성 구분 짓지 않고 섹스라는 행위가 번식 외에 동기의 자율성을 갖고 나타나는 행위라고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제13장 이원론 문제 ; 마음과 뇌와 몸은 하나다
서양 종교와 철학의 이원론, 몸을 장애물이나 감옥에 비교하여 경시하고 마음을 우선시한다. 여성은 몸과 너무 밀접한 관계에 있어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로 바람직하지 못하게 보았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몸이 여성 모욕의 원천이라고 보고 몸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아 이러한 이원론을 수용한 듯 보인다. → “여성의 해방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우리 몸으로부터의 해방” 젠더 개념이 급진적일수록 설자리를 잃는 우리의 몸
사랑과 존중으로 가는 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혼합은 삶을 흥미롭게 만든다. 생물학적 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젠더 중립적 사회를 요구하는 주장은, 성에 관심을 덜 기울이면 더 나은 세상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 목표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성이나 젠더의 존재가 아니라, 그와 관련된 편견과 불평등,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일부 사람들에 배제하는 전통적 이분법의 한계에 있다. 오래된 성 구분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더 깊은 문제인 사회적 편견과 불공정을 해결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심신 이원론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일 수 있다. 우리 몸에서 도망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LGBTQ 어린이들의 신념은 외부가 아니라 몸 내부에서 나온다. 분명히 사회적 환경이 모든 패를 다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보편성에는 우리 종의 생물학적 배경이 반영돼 있다. 같은 차이가 동료 영장류에게서도 나타난다면, 이 주장의 신빙성은 더욱 높아진다.
가끔 자연이 양육보다 우선한다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가장 생산적인 접근법은 둘 다 고려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 작용이 반영돼 있다. 생물학은 방정식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생물학자이지만 인간 문화의 힘을 굳게 믿는다. 나는 젠더 관계가 나라마다 얼마나 다른지 직접 경험했다. 젠더 사이에 정신적 우월성이나 선천적 지배성이 있다는 개념을 참을 수가 없으며, 그런 개념을 버리길 희망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상호 사랑과 존중, 사람은 평등하기 위해 똑같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의 이해에 달려 있다.
자연 세계의 사례들은 인간의 입맛에 맞게 근거를 댈 수 있는 다양한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모두 실제 존재하는 사례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것을 근거로 인간의 경우에 답을 내릴 수 없다. 여러 유인원 종을 참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 종과는 또 다르다. 유인원 종 내에서도 다양한 종, 개체가 비슷하면서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참고해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 우월하다 혹은 여성이 우월하다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으며 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의 경우, 아비와 어미는 유전체에 똑같이 기여한다. 유성 생식은 양 부모가 모두 생식에 기여하면서 새로운 세대마다 유전자 조합이 뒤섞이면서 변화하는 환경과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 유성 생식은 우리를 유전적으로 유연하게 만든다.
호르몬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뇌의 성차가 나타나지만, 남녀의 뇌는 공통점이 더 많으며 호르몬과 행동 간의 단순한 일대일 대응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 복잡한 문제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요소와 환경, 본성과 양육 두 가지의 상호 작용이 반영되어 형성된다. 생물학은 생각보다 유연하고, 젠더와 성의 병치는 생물학과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늘 예외의 여지가 있는 쌍봉 분포를 따른다. 이분법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분법에서 벗어나 상호 사랑과 존중, 사람은 평등하기 위해 똑같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사회적 편견과 불공정을 해결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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