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뉴스가 만연하여 진실을 가리고 국민 간, 국가 간, 집단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세상이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발달하여 정보의 거름망 없이 누구나 쉽게 정보를 만들어 퍼트릴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과학 부정론을 연구해 온 저자 리 매킨타이어는 이러한 탈 진실의 시대에 과학을 부정하고 근거 없는 정보를 신념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법, 그들에게 진실을 전하는 법을 알려준다. 사실 그 방법은 모두 알고 있듯이 공감, 존중, 경청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열고 진심을 무기로 대화하는 것이다. 자명한 사실을 굳이 책으로 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비과학적 가짜 뉴스가 만연한 지금 시대에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지구는 사실 평평하다.” “기후변화는 사기에 불과하다.” “백신은 몸에 해롭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세상에 넘쳐나는 가운데,
보고 싶은 것만 보게끔 하는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을 통해 황당한 주장을 접하고
가짜 전문가에게 설득당하며 음모론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탈진실의 시대에 과학적 태도로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20년 가까이 깊이 연구하며
《포스트트루스》 《과학적 태도》 등의 책을 집필한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독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과학을 부정하고 이성적 대화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반박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이들을 올바른 신념으로 인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을 믿지 않는 이들의 생각을 바꿔서 진실을 인정하게 하려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요?
…
평평한 지구론자를 시작으로 저자는 기후변화 부정론자, 백신 거부자, GMO 반대자 등
다양한 과학 부정론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험에 나선다.
과학 부정론자들의 논리 속 맹점을 찾아서 지적하는 편이 나을까? 실제로 만나보면
그들은 과학 부정론자가 아니라 회의론자일지도 모른다.
증거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논거가 부족한지 보여주면 어떨까?
이 책은 이런 저자의 문제의식들을 토대로 몇 년간 벌인 대화 도전의 여정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저자가 책을 집필하던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자리에 있었고 우리는 팬데믹의 한가운데 있었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파리협정을 탈퇴했고 기후변화를 부정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코로나의 심각성을 부정하며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과학 부정론이 트럼프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악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가 대표적 사례이지만, 오늘날 과학 부정론자의 대다수가 보수주의 정치 성향을 보인다.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에 도전하는 여러 과학적 발견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시화되었다. 사람들은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 논증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답을 얻기 위해 논증을 하고 있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 백신 음모론을 신뢰하며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부정하는 이 같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다섯 가지 논증 오류를 가지고 있다.
체리피킹
일종의 선택편향,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실을 취사선택
음모론
증거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 이론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태도가 문제. 과한 자신감과 자기애 혹은 낮은 자존감에 기인했을 수 있다. ‘직감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음모론에 기반한 사고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가짜 전문가에 의존
진짜 전문가를 무시
비논리적 논증
허수아비 논법-상대의 주장에서 약점을 찾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수법, 논점 흐리기, 잘못된 유추, 잘못된 이분법, 속단하기
과학이 완벽해야 한다는 주장
귀납적 논증의 특성을 감안할 때 과학적 가설의 기초에는 언제나 약간의 잔여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과학 부정론자들은 이것을 통상적으로 악용한다.
기후변화 부정론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크고 중요한 과학 부정론의 사례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부정론은 기업과 정치적 이익에 의해 생산된 허위 정보가 유포된 결과이며 이로 인해 대중은 오도되었다. 몰디브는 침몰, 이주를 대비해 국부를 저장해 놓을 정도로 현재 기후 상황은 심각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를 부정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절대적인 섭리를 따르고 자연의 순수성을 수호하며 애국심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경우, 친환경 메시지를 기꺼이 수용하는 보수주의자들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다음은 유전자변형생물체 GMO를 둘러싼 의견을 살펴보자. GMO 제품이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GMO가 먹기에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어떤 GMO는 더 많은 살충제와 제초제의 사용이 허용되기 때문에 그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이 차이에 주의를 기울이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GMO 반대는 이념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렸다. 대표적인 GMO 생산기업 몬산토에 대한 반발이 GMO 거부로 이어졌고 이 결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의 기아들이 죽어나갔다.
그렇다면 GMO 저항운동은 진보적 과학 부정론의 사례인가? 아니다. 그들이 과학을 거부하는 것은 진보주의 이념에서 기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의 절반 이상이 GMO가 섭취에 안전하지 않다고 답한 설문 결과도 존재한다. 보수주의와 자유 시장 이념을 수용하는 것이 기후변화 부정론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러나 GMO라는 주제에서는 상황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신과 부정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정치화된 정체성이라고 결론 내리는 편이 탈진실의 시대에는 솔깃하긴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정치적이 아닌 수많은 종류의 정체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학 불신론자의 생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대면하여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적절히 대응하는 편이 좋다. 참여, 신뢰, 관계, 가치는 진짜 믿음을 변화시키는 핵심 요소들이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친절하게 대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군가의 신념이 정보 격차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이 그 격차를 악화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경청과 공감과 존중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경청, 공감, 존중은 우리가 서로의 믿음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는 유일한 덕목이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에서 교훈을 얻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수많은 과학 불신론으로 인해 위기에 초기 대응을 적절히 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나서야 과학이 제시한 방법을 따르게 되었다. 이것을 교훈 삼아 앞으로 발생할 다른 위기들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과학 불신론자와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 그래프, 차트, 도표를 활용하라
● 과학적 합의를 강조하라
● 개인적인 만남이 가장 효과적이다
● 내용 반박과 기술 반박을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과학 부정론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필수 무기 중 하나이다.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관련해 투명성과 개방성을 입증하면서, 겸손과 존중의 자세를 보여주고,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막대한 비용을 기억하며 끈질기게 그들과 대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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