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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정리

문학을 통해 보는 공감과 몰입의 뇌과학적 메커니즘 <뇌를 훔친 소설가>

by 몬mone 2023. 11. 26.

 

 

 

 

 

과몰입을 잘 하는 타입인지라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을 보고 깊이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내 신체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늘 궁금했었다. 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책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내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감정이입과 몰입이 어떠한 뇌과학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문학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문학과 신경과학의 접점에서 의미와 성찰을 던지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윤리적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쉽고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지 않다. 대신 저자가 뇌과학자가 아니고 문학 박사이고 지금은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12년 전에 나온 책이라, 더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원한다면 추가로 다른 책을 참고하길 추천한다.

 

 

 

 

 

《뇌를 훔친 소설가》는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여러 신경과학적 메커니즘들이

옛 문학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파헤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석영중 교수는 오랫동안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대문호들의 작품과 삶을 연구해온 러시아 문학 전문가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문학과 신경과학의 접점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러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권 문학작품까지 두루 살펴보면서,

그동안 단순히 예술로만 치부해온 문학 속에 감춰진 인간 뇌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I 흉내

거울뉴런 : 타인의 행동을 마치 거울처럼 반사하는 신경세포. 우리로 하여금 일종의 자동적인 내적 모방을 통해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도록 하고, 그들의 감정에 우리 스스로를 조율하도록 해준다.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감정이입

 

우리는 다른 사람의 정서 시스템이 활성화된다고 상상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정서적 뇌 시스템을 활성화해서 타인의 마음 상태를 실제로 흉내 낼 수 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감정들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 UC 샌타바버라 신경과학센터 소장 마이클 가자니가 Michael Gazzaniga

 

 

푸슈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 타티야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했던 소녀. 그 소설들을 읽으면서 타티야나의 거울 뉴런은 쉴 새 없이 발화했을 것이다. 타티야나는 소설 속의 사랑을 자신의 삶에 대입해 재창조 → 오네긴에게 쓰는 편지. 타티야나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그것이 모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거울 뉴런과 달리 흉내를 억제하는 다른 신경 기제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 추정상의 뉴런인 ‘슈퍼 거울 뉴런’의 예) 반면 오네긴은 끝까지 모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방이 모방임을 인식하고 그걸 통해 성장하고 자신의 눈으로 삶을 창조해가는 타티야나, 푸슈킨의 분신과 같은 인물. 푸슈킨에게 위대한 창작의 비밀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영감 역시 모방을 통해 천재 시인의 머릿속에 불어넣어진다. 이 다시 만들기의 과정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독서와 습작. 창의성은 누적된 모방에서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모방 본능에 관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작가 중 한 사람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모방 행위의 양가적인 면을 논리적으로 파헤쳤다. 인간의 모방하는 본성 때문에 예술은 감염이란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은 감염될 수 있는 능력(거울 뉴런) 덕분에 생존을 지속할 수 있고,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더 높은 선의 고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톨스토이가 경고했던 예술의 감염성을 현실에서 보여준다. 허구의 주인공 베르테르를 본받아 현실 속의 사람들이 자살을 감행하는 행위는 인간의 흉내 본능,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모방과 감염을 축으로 하는 톨스토이의 예술론이 결국은 도덕론으로 이어졌듯이, 신경과학자들의 거울 뉴런 논의 또한 보편적인 윤리의 문제로 연장된다. 거울 뉴런의 활동을 긍정적 극단으로 밀고 가서 인간의 결속 지향성을 긍정적 의미의 공동체로 완성하느냐, 아니면 그 부정적 극단의 디스토피아로 밀고 가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선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신경윤리학이 궁극적으로 완수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II 몰입

하나의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화학물질,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보상 신경전달물질’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무언가를 달성했을 때 뇌에서 분비되어 인간에게 쾌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표현 “행복감으로 머리가 멍해진다” → 신경과학자들의 표현 “쾌감중추 발화”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은 뇌를 각성시켜 집중과 주의를 유도하고 쾌감을 일으키며 삶의 의욕을 솟아나게 하고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몰입이란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 즉 “의식이 질서 있게 구성되고 또한 자아를 방어해야 하는 외적 위협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될 때”와 동일한 개념

- ‘몰입flow’시리즈로 유명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

 

 

목표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몰입이야말로 뇌에서 도파민이 흘러넘치는 상태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칙센트미하이가 지적하는 몰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아지경’과 ‘시간의 상실’

소설 <닥터 지바고> 속 라라는 지바고가 시를 쓰도록 이끌어주는 내면의 자아, 즉 지바고의 시적 분신.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몰입하는 주체와 몰입의 대상 사이의 경계마저 사라져 몰입의 주체와 몰입하는 대상이 하나가 된다. 지바고 역시 시 쓰기에 완벽하게 몰입할 때 동일한 현상을 체험. 이러한 몰입 상태를 체험할 때 그의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는 극도의 행복감에 전율한다.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최적 경험의 핵심 요소는 그 경험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자기목적적, 미래의 이익에 대한 기대 없이 단순히 그 자체를 수행하는 것이 보상이 되는 행동 의미. 소설 <모비 딕>에서 모비 딕을 향한 에이해브 선장의 광적인 집념은 몰입의 극단적인 사례. 고래 추적은 추적을 위한 추적, 곧 ‘자기목적적인’ 행위로 변질. 에이해브와 그의 고래잡이, 흰고래 모비 딕은 증오를 접점으로 일체가 된다. 즉 몰입의 또 다른 특성인 주체와 객체의 일치가 발생

 

 

III 기억과 망각

자아감을 갖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뇌의 특징, 기억.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것이 쓰였던 시절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감각들이 뇌 안에서 어떤 식으로 배치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직관적으로 후각과 미각이 가장 오래 기억되는 감각임을 알고 있었다. 기억이란 한 번 저장되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기억과 오기억 시에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거의 같다. 게다가 몇 시간 이상 지난 장기 기억의 경우에는 참기억과 오기억의 구분이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소설가에게 기억은 상상력의 영역으로 흡수된다.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기억과 상상은 종종 함께 묶인다.

샥터의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은 소멸, 정신없음, 막힘,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을 일곱 가지 죄악으로 간주한다. 이것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1. 완벽한 망각 2. 지나치게 잘 기억하는 상태 3. 잘못된 기억

구소련 시대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야의 <거대한 기억에 관한 작은 책> =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기억이 과하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 망각은 생존의 조건. 잘 기억하는 것 못지않게 잘 잊는 것도 필요하다.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은 과다한 기억의 비극을 보여주는 예.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이 하루 종일 누워서 기억하는 일만을 함. 푸네스의 전신마비라는 육체의 상태는 망각 불능이라는 정신의 상태를 비추는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잘 잊는 것 역시 인간이 생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것도 잊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IV 변화

뇌의 가소성(변화 가능성, 유연성)이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되지만, 그 의미와 파장은 가히 21세기 뇌과학의 미래를 뒤흔들 정도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신경가소성은 우리의 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열심히 뇌를 단련시키면 새로운 회로와 연결이 뇌에 생성된다. 그리하여 뇌의 지형이 완전히 바뀐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따라 인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함께 발화하는 뉴런들은 단순히 함께 배선될 뿐만 아니라 연결의 강도와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그 영향력이 매우 장기화된다. → 장기 증강.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약한 자극이 가해져도 표적 세포가 크게 흥분한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는 많은 근육과 많은 뉴런이 요구되지만, 어느 정도 탈 수 있게 되면 적은 근육과 적은 뉴런으로도 잘 탈 수 있는 원리. 이 장기 증강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습득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지만, 그 습득한 무언가를 없애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는, 그야말로 양날의 도끼와도 같은 현상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결국 뇌가소성을 우리의 삶과 결부시켜 말하자면 ‘학습’과 ‘탈학습’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배우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향유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 아무리 화려하고 풍족한 삶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변화도 성장도 없다면 그것은 ‘범속한 것’이 된다. 가소성의 역설로 설명될 수 있는 경직된 삶이 러시아에서는 일종의 사회병리학적 현상으로 간주. 범속한 일상은 그 자체가 일종의 죽음. 정치적 혁명의 시기에 예술 혁명을 주장한 그들의 이론은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으로 요약되었다.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가인 슈클로프스키는 예술의 일상성을 타파하자는 취지에서 이 용어를 만들어냈다. 낯설게 하기는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도파민 과잉은 도파민 부족 못지않게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유지하려는 힘과 바꾸려는 힘은 반드시 둘 다 존재해야 한다. 두 힘의 긴장관계야말로 인간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힘의 원천. 문제는 균형이다. 결국 가소성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균형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