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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정리

성별 유형화된 역할과 능력은 뇌에 고정적으로 배선된 것이 아니다. <젠더, 만들어진 성>

by 몬mone 2023. 11. 27.

 

 

 

 

 

이 책에 대한 평으로 ‘데이비드 라이머’ 사건을 예로 들면서 이 책의 주장이 데이비드 같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쓴 것을 보았다. 이 책은 남녀가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의 차이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녀의 뇌가 태어날 때부터 달라서 성별에 따라 달리 교육을 받고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남녀 뇌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차이보다 더 많은 공통점이 존재하며 성차별의 근거로 성별 뇌 구조의 차이와 같은 생물학적 요소를 언급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신경 과학자들조차도 개개의 뇌를 두고 남성의 뇌인지 여성의 뇌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신경과학을 근거로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주장들이 존재하는데, 책은 이 근거의 미묘함에 대해 지적하며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는 것을 짚는다. (자궁 내 테스토스테론의 차이는 남녀 생식기 차이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그것은 성 유형화된 행동과는 상관이 없다. 즉,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차이는 생식기의 차이를 만들지만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차이 때문에 성별 유형화된 행동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생후 5개월 된 아기들에게서도 성별 심적 회전 능력의 차이가 관찰된다. 하지만 심적 회전 능력은 쉽게 바뀐다. 훈련으로 쉽게 향상 가능하고 심지어는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을 앞으로 드러내서 설명하거나, 단순한 거짓말을 활용하는 술책으로도 성 차이에 대한 결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성별 심적 회전 능력의 차이는 타고난 고정 값이며 성별 직업 선택이나 업무 능력에서의 차이를 발생시킨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 것이다.)

책은, 성 고정관념과 성 역할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며 남녀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성차별을 공고히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설명한다.

 

 

 

 

 

현대 사회에서 남녀차별이라는 말은 점차 멸종의 위기로 향하고 있는 단어가 되었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의 인식이 바뀌면서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동등한 지위를 논하는 것이 당연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흐름과는 반대로

“남성의 뇌는 세계를 이해하고, 여성의 뇌는 사람을 이해한다.”와 같은 주장 또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감정적이고 세심한 여성, 분석적이고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이성적 남성은 사회적 맥락과는 또 다른,

과학이라는 강력한 이름의 증거를 얻어 대중들에게 더욱 당연하게 인식되었다.

수많은 심리학, 뇌과학 대중서들은 남녀의 뇌가 다르게 태어났다는 생물학적 근거를 들며

자신의 이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생각에 납득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거의 없다!

고정적으로 배선된 남녀의 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21세기 과학이 만들어 낸 새로운 신경 성차별

혹은 뇌 성차별이라고 부르는 “뉴로섹시즘neurosexism”일 뿐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과대 포장되어 온 그것은 파란색 체육복과 분홍색 원피스 같은 편견과

우리의 마음과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이지 절대적이거나 불변하는 믿음이 아니다.

언제든지 유연하고 새롭게 바뀔 수 있는 차이일 뿐이다.

 

 

 

 


 

 

 

 

Ⅰ부 “ 절반만 바뀐 세계 ” 절반만 바뀐 마음

 

우리들이 암묵적으로 가지는 고정관념, 태도, 목표, 주체성도 “의식, 의도, 통제에 지장 받는 일 없이” 작용한다. 자아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는다. 모든 성 차이는 고정적으로 배선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차이는 사회적 정체성 변화에 따라 제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끌어 내는 것은 성 그 자체가 아니라 성의 특징과 성과 관련된 표준” 심적 회전mental rorarion이라는 시공간적 능력. 성 차가 잘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5개월 된 아기들에서도 성 차이 관찰. 그러나 심적 회전 능력은 쉽게 변한다. 과제를 설명하는 방법을 바꾸어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을 앞으로 드러내거나, 단순한 거짓말을 활용하는 술책으로도 성 차이에 대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현실이 마음을 형성한다.”

남성적 영역에 속한 여성들은 종종 고정 관념화된 위협으로 인해 생성된 불쾌하고 보상받을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작업해야 한다. 따라서 여성들이 자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외부 영향에 휘둘리기도 한다.

두 성을 모두 살아 본 사람들의 경험에서 오는 통찰은, 직장에서 그들이 남성일 때 한 사람의 재능이 더 쉽게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는 아주 흥미로운 일각을 보여준다. 실증적 연구도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사회적 배제. 현대 여성들이 직장에서 직면하는 적대심, 성차별주의, 수모는 여성에게 적합한 영역에 관한 오래된 견해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경우, 여성이 하는 육아와 집안일의 양은 남성의 두 배나 된다. 여전히 가정과 아이들이 주로 ‘그녀’의 의무라고 말하는 강력한 사회적 기준이 존재한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실제로 남성이 집안에서 동등해지기 전까지는 여성이 집 밖에서 동등해지는 일은 절대 없다.”

“우리는 성 유형화된 자아에 빠져 있다.” 자아의식, 사회적 인식, 행동의 성 유형화는 또다시 아주 매끄럽게 성 유형화된 사회적 세계의 일부가 된다.

 

 

Ⅱ부 뉴로섹시즘

 

자궁 내 테스토스테론의 증가는 태아의 남성 생식기를 생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태아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그 이후의 각 성 유형화된 행동 사이의 상관성, 또는 남아와 여아의 차이점은 태아기 테스토스테론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혈액 샘플은 극도로 희귀하여 아기의 혈액 내에 순환하는 테스토스테론 양을 직접적으로 측정하지 못한다. 손가락 길이 비율을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나타내는 대용물로 여긴다. 성 고정 관념화된 행동 유형들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유아기 초기에 학습하는 것일 가능성.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고 해서 그들의 수학 능력이 향상된다는 근거는 없다. 이런 성호르몬이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쳐 성 차이를 설명한다는 자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이 존재한다고 추측되어 왔다.

과거, 여성은 투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뇌를 가졌다, 얼굴 각도에 따라 지적 수준이 파악 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은 여성을 억압하는데 이용되었다.

신경 과학자 아이리스 소머Iris Sommer와 그 동료들은 언어의 좌우 뇌 기능 분화를 다룬 모든 뇌 기능 영상 연구들을 메타 분석으로 검토했다. 두 번의 메타 분석 모두 기능적 언어의 좌우 뇌 기능 분화에서 유효한 성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성 차이를 발견한 연구들의 표본 규모가 그렇지 못한 연구들보다 작은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는 소규모 연구에서 발견될 확률을 편향되게 보고한 서류함 현상이 작용한 징후일 수도 있다.

그동안의 역사에서 진실이 뒤집기 되는 경우는 많았다.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뇌에 성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을 복잡한 심리적 기능에 연계하려는 시도는 조심해야 하고 그 파급력을 생각해야 한다.

뇌에서 나타나는 많은 성 차이는 뇌 자체보다도 뇌의 크기 때문이라는 걸 떠올려 보라. 심리학과 신경 과학이 유사점이 아닌 차이점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발견을 보고하는 방식을 기억하라. 물론 남성과 여성의 뇌는 서로 다른 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유사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패턴은 서로 크게 겹칠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여성의 뇌만큼 남성의 뇌와 흡사한 것은 없다. 신경 과학자들조차도 개개의 뇌를 두고 남성의 뇌인지 여성의 뇌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신경 과학자는 자신이 발견한 뇌의 성 차이가 어떻게 해석되고 전달되는지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편집자, 기자, 학교들은 한시라도 빨리 뇌의 성 차이에 대해 훨씬 더 회의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뉴로섹시즘은 고정관념과 한계를 강화하고 자아 인식을 방해한다.

뇌는 계속해서 변하고 유전자와 환경과 상호 작용한다. 유전자에 관한 한, 우리는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그대로 태어난다. 하지만 유전자 ‘활동’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의 환경, 행동, 심지어 우리의 사고조차도 발현된 유전자를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생각, 학습, 감각은 모두 신경 구조를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다. 생물학은 우리의 심리와 환경, 우리 행동과의 상호 작용 및 반응에 따라 변하고 발달한다. 생물학은 가능성을 정의하지만 결정한다고는 할 수 없다.

성 차이는 언제나 좁아지고 있고, 수학적 명성은 고정되지도, 고정적으로 배선되지도, 본질적이지도 않다. 대신 성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수학적 재능이 확인되고 양성되거나, 아니면 무시되거나, 억압되거나, 억제되는 범위에 영향을 주는 문화적 요인들에 반응한다.

 

 

III부 젠더 리사이클링

 

부모의 성 연상은 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신생아들조차 모국어에 대한 선호도를 보이는데, 이런 종류의 발견은 우리가 아주 어린 남아와 여아의 차이를 이해하려 할 때 아기의 환경과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학습기계.

성 유형화된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서 우리는 더 이상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아이들의 생활 속에 문화적 상관성에 대한 정보가 넘쳐 난다는 점과 더불어, 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성 중립적 양육 방식이 실패하는 건 전혀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 연결 정도는 유연하고, 펴 늘릴 수 있고,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믿기만 한다면 계속해서 얽힌 매듭을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뉴로섹시즘, 즉 신경과학 기반의 성차별을 비판하고 신경과학자의 책임감을 강조한다. 내가 읽었던 다른 여러 뇌신경과학 책은 성별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두 이야기는 다른 주장이 아니다. 차이는 존재하지만 차이보다 더 많은 공통점이 존재하며 그 차이가 성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주장을 구분할 수 있는 포인트는 페미니스트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과학과 심리학,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것. 각자의 분야에 서서 보고 듣고 발견하고 학습한 것을 가지고 그것에 집중해서 주장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란스 드 발이 쓴 <차이에 관한 생각>에 잘 나와 있듯이, 젠더 별 장난감 선호에 대한 성차는 생물학적 기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호 장난감 유형에 따라 아이를 정의 내릴 수 없다. 아이들 놀이의 상당 부분은 장난감이나 젠더와는 관계없이 다양하다. 즉 생물학적 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선호나 행동 유형에 따라 개인을 정의할 수 없고 고정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형화, 고정관념화하는 것은 오류이고 그것은 다양성을 지워 모든 면에서의 발전을 저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