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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정리

인문학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by 몬mone 2023. 12. 9.

 

 

 

나 역시 문과이다. 수학에 약하고 과학에 깜깜하다. 그래서 의무교육을 마치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 후에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취약하다고 생각한 경제와 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물론 이 외에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채우려 노력했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에서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과학이 인문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같은 현상에 대한 인문학과 과학의 설명을 통해, 인간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한 가지의 사고만을 하느라고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새로운 지식을 차단하고 나만의 생각에 매몰되진 않았는지 확인하며 통섭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책이다.

 

 

 

 


 

 

 

1. 그럴법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 (인문학과 과학)

인간의 몸이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균과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시대에도 생명의 유래와 우리 존재의 이유와 인간의 본성과 죽음의 실체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어떤 삶이 훌륭한가?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는가? 어떤 힘이 사회 질서와 문화를 바꾸는가? 역사에 정해진 방향이 있는가?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는 질문은 인문학과 맞지 않는 형식→‘나는 누구인가?’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과학자는 물리 법칙에 입각해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한다. 인간의 몸은 입자의 집합이니 당연히 물리법칙을 따른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으로 인간과 사회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필요하다. 과학이 더 발전해도 인문학은 인문학의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형식과 내용 그대로는 아니다.

 

2. 나는 무엇인가 (뇌과학)

나를 온전히 알려면 우리가 발 딛고 선 물질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경제학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소비자가 같은 재화의 소비량을 계속 늘려 나가면 마지막 한 단위를 소비해서 얻는 쾌락의 양이 점차 줄어든다. → ‘법칙’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과 특성을 드러내는 ‘현상’일 뿐. 같은 종류 같은 강도의 자극을 계속 가하면 신경세포가 점점 둔감하게 반응한다.

사람만 주관적 감성형식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가진 동물은 다 저마다의 감성형식이 있다. 동물이 경험하는 세계의 형태는 뇌의 정보처리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과 박쥐는 주관적 감성형식이 달라서 동일한 ‘사물 자체’를 각각 다른 ‘현상’으로 인식한다.

‘거울신경세포’ 대뇌피질을 비롯한 뇌의 여러 부위에 분포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행위를 조장하거나 억제하는 등 여러 일을 한다. 또한 공감과 도덕적 동기 유발의 기초를 제공하며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염려하고 덜어주는 행위를 장려한다. 모방하고 공감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는 언어를 익힐 수 있고 언어가 있기 때문에 큰 규모의 공동 행동을 조직할 수 있었고 문명을 건설했다. → 맹자는 사람한테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남을 도우려 하는 생물학적 본성이 있다고 봤다. 측은지심.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3.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생물학)

진화론을 오남용한 우파, 부자와 권력자는 사회의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이고 가난과 무지는 적응에 실패했다는 증거.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원리를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요약. 우생학.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사회적 미덕으로 찬양. 인종차별과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이념의 도구가 됨. 좌파는 우파가 다윈주의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을 배척함. 그러나 다윈과 다윈주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님.

모든 동식물의 유전자는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모든 생물의 DNA가 동일한 알파벳으로 씌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유전학의 증거다.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 다윈주의를 바탕으로 자연선택이 동물 사회와 동물의 사회성 행동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설명한다. 한 종의 본성이 달라지는 데는 역사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진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정도로 오래 존재하는 생명의 단위는 유전자뿐이다.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은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물리학과 화학이 없으면 천문학과 생물학은 존립하기 어렵듯이 인문학이 다윈주의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다윈주의를 오해하고 배척하는 좌파들은 이것을 생물학 패권주의라 비판.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밑바닥에는 생물학적 제약조건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은 오로지 남을 죽여야만 생존하는 검투장이 아니라 공감, 협력, 거래, 공존의 무대이기도 하다.

 

4. 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화학)

화학은 생명을 해치는 사악한 마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

물질의 조성과 구조, 성질, 관계,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인 화학.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정체를 모르고는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파악할 수 없다. 환원은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것으로 쪼개는 것. 화학은 환원의 필요성과 위력을 잘 보여준다. 환원주의는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 현상을 추동함. 환원주의의 가장 중대한 위험은 복잡한 것을 설명한다는 원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 복잡한 것을 설명하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연구자가 자신이 몸담은 세부 학문의 경계를 넘어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습득하고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소통해야 한다. ‘통섭’ 범학문적 연구. 환원과 통섭 필요.

호모 사피엔스가 탄소를 악당 취급하는 것은 살인범이 칼을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탄소는 좌우를 통합하는 유능한 중도. 남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필요할 때는 원만한 관계를 맺는다. 남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5.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물리학)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다. 거꾸로 말해야 맞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진정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생물의 몸은 세포의 집합이다. 세포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원자의 결합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원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지구 밖에서 왔다. 빅뱅.

양자역학과 불교가 통하는 점, 다른 것과의 관계를 떠나 독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으며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원자로 꽉 차 있고, 원자는 모두 텅 비어 있다. 존재와 무를 어찌 구분할 것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양자역학과 엮으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과학은 어떤 경우에도 종교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는 필요에 따라 과학을 배척하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한다. 불교와 양자역학의 유사성은 우연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유물변증법. ‘물질이 관념에 우선한다. 세계의 본질은 운동이다. 사물은 대립물의 통일이다. 변화의 동력은 대립물의 투쟁이다. 양적 축적은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모든 사물이 대립물의 통일인 것처럼 사회는 대립하는 계급의 통일이다. 사회 변화의 동력은 대립하는 계급 사이의 투쟁이다. 유물변증법에 토대를 둔 마르크스의 역사이론. 양자역학, 양성자와 전자는 양전하와 음전하를 띤 대립물이며, 원자는 그 대립물의 통일이다.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것도 그렇게 볼 수 있다. 모든 입자가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대립물의 투쟁이 물질의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도 옳다.

엔트로피 법칙, 무질서도.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지금에 충실

 

6. 우주의 언어인가 천재들의 놀이인가 (수학)

수학은 우주의 언어. 수학자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천재. 수학은 천재들의 지적 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