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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정리

공공선과 자치 참여 열망의 회복이 필요한 때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by 몬mone 2023. 12. 11.

 

 

 

 

 

빌 클린턴은 말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마이클 샌델은 말한다. 경제가 다는 아니라고. 정치 담론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은 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중심으로 결정된다. 그러면서 인간성이 상실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다.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민주주의 정책 결정을 좌우하면서 시민으로서 자치에 참여하는 권리는 박탈되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선택한 민주주의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공선과 자치 참여에 대한 열망이 중요한 때이다. 지금껏 옳다고 믿어온 삶의 질서에 대해 의심하고 더 적극적이며 주체적으로 사고하도록 독려하는 책이다.

첫 장에서는 자유주의적 자유와 공화주의적 자유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면서 자유관의 차이에 따른 정책과 정치철학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는 현 정부가 떠오르면서 이 정부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졌다는 것 외에 어떠한 철학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미국 정치.경제사를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는 사례들이 있어 비교해서 보다 보니 더 흥미로웠다.

초판인 「민주주의의 불만」을 읽었었는데도 개정판인 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만큼 어려운 책이다. 따라서 요약이나 책 소개와 같은 설명을 충분히 보고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 공화주의적 자유 : 시민이 자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 정치는 중립적일 수 없음. (19-20세기 초 미국)
  • 자유주의적 자유 : 나의 바람대로 행위 할 수 있는 자유. 정치는 중립적 (~현재의 미국)

 

  • 공화주의적 경제관 : 경제는 소비뿐만 아니라 자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Not only 소비자 but also 시민. 시민적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경제는 중립적일 수 없다.
  • 자유주의적 경제관 : 소비는 모든 경제 활동의 유일한 목적. 경제에서 일차적 문제는 국가 생산물의 규모와 분배 방식. 목적 중립적 태도

 

자유주의적 자유관은 자유가 보장되려면 꼭 필요한 공동체의식과 시민적 참여를 고취하지 않기 때문에 공적 삶을 힘들게 만드는 자치 권한의 박탈감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 문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의 정치경제학이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을 밀어냈다. (자유주의적 경제관이 공화주의적 경제관 대체)

 


 

해밀턴의 국가 재정 체계 (↔공화주의자)

초대 재무부 장관이었던 해밀턴, 경제적 차원의 고려를 넘어 동일한 수준으로 정치적 목표를 추구함. 공화주의의 이상을 거부하면서 선진적 상업과 제조업 경제의 기반을 마련할 목적으로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려 함.

공화주의 정치경제

매디슨은 공화주의 정부에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농업적 삶의 방식(시민의식 고취 측면의 방식)을 보존할 목적으로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려 함.

제조업

공화국 초기 수십 년 동안 많은 미국인은 미국이 제조업 국가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제조업의 발달로 시민들이 독립성을 가지고 자치에 참여할 능력이 위협받을 것이라 예측) 이때의 정치적 담론에서 시민적 특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 정치적으로 독립한다고 해서 경제적 독립이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은 예전처럼 다시 미국의 무역을 지배했고 미국 국내 제조업의 필요성이 새롭게 대두됐다.

자유노동 대 임금노동

미국이 제조업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쟁점이 등장했다. 바로 임금노동, 즉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이 과연 자유라는 개념에 부합하느냐는 것이었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노동은 시민이 공화주의적 자치에 적합한 덕목을 함양할 수 있는 조건에서 이뤄지는 노동이다.

19세기 초 미국 제조업의 거의 대부분을 떠맡았던 장인, 숙련공, 기술자들은 일반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생산자였다. 노동을 수행하기로 자발적으로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을 통해 자치에 참여할 능력을 가진 독립적 시민으로 거듭나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면에서 자유로운 노동이었다. 그러나 경쟁의 압력이 세지면서 외부 노동자나 저임금 도급업체에 맡기는 일이 늘어났다. 이들은 아무런 통제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임금노동자로 바뀌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임금노동 체계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시민적 개념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발주의적 개념을 채택. 임금노동이 도덕적이고 독립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에 맺어진 자발적 계약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유 개념과 일치한다고 주장.

노동운동은 19세기 후반까지 자유노동에 대한 시민적 개념을 유지했지만, 결국 임금노동의 영속성을 인정하면서 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근로조건 개선 등으로 관심의 방향을 바꿨다. 노동조합주의의 한 갈래로 전환. 즉 노동운동이 정치적, 경제적 개혁에서 “순수하고 단순한” 노동조합주의가 됨. 이 전환을 계기로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경제 성장과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 공화주의적 공공철학→절차주의적 공화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자유주의적 버전으로 대체됨.

정부의 중립성과 자치 권한 박탈

자발주의적 자유관의 영향으로, 시민의 바람직한 도덕적, 시민적 덕목을 배양하는 역할을 정부가 수행해야 한다는 발상 → 정부는 여러 시민 집단이 제각기 옹호하는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하고 또 시민이 자기의 목적을 스스로 선택할 능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옮겨감.

지난 수십 년간 개인의 권리와 혜택이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요소들을 스스로 통제하는 미국인의 통제력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자치 권한의 박탈감은 자유주의적 자아상과 현대의 사회경제적 삶의 현실적 조직화가 서로 크게 어긋나는 데서 비롯된다. 오늘날처럼 전 세계가 서로 의존하여 얽혀있고 다양한 인구 구성의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사실상 국가 차원의 공동생활이란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 절차적 공화주의로의 이행이 촉진된다. 권력이 거대 기업들로 집중, 전통적 형태의 권위와 공동체가 침식. 자치가 위기를 맞고 공동체가 훼손되는 두 현상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

 


소비자주의적 전망

과거 공화주의 정치경제학 전통에서는 생산자라는 정체성이 중요, 과도한 소비 즉 사치는 부패이고 이것은 시민적 덕목의 상실 척도. 생산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한 데는 자치에 필요한 시민의 성격적 자질을 함양하겠다는 시도가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소비자를 기반으로 하는 개혁으로의 전환은 공화주의 전통의 형성적 야망에서 벗어나는 전환이었으며, 또한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에서 벗어나는 전환이었다.

절차적 공화주의의 승리: 민주주의의 불만이 불신으로 이어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정책은 전체 국민생산의 규모와 분배에 집중하는 반면, 자치의 조건에는 소홀했다. 미국인들은 점점 더 경제적 조치나 제도를 시민의식 함양의 학교가 아니라 소비의 도구로 바라봤다. 경제는 공화주의가 바라는 민주적 지배를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20세기 후반이 되면 시민적 자유를 추구하는 노선이 쇠퇴하면서 민주적 제도와 기관에 대한 불만이 늘어났고 공동의 목적과 공유된 인식은 느슨해졌다.

정부가 중립을 지키면서 온갖 사건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해 보였고 정체성과 소속감을 불어넣는 여러 공동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 자치의 상실과 공동체의 잠식.

 


 

21세기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한층 더 예리해졌고 사회적 결속력은 철저하게 무너졌으며 좌절감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 교리를 넘어 세계화, 금융화, 능력주의라는 상호강화 관계의 특성으로 구성된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규모는 국가 차원이 아니라 세계 차원이며 또한 금융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세계화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소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유일하게 생존한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사례였다.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세계시민적인 “장벽이 없는 세상”은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이 더 중요한 경제 체제를 가리키는 표현이 됐다. 이런 변화를 걱정스럽게 바라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세계화 추세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반박하는 세계화 지지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계화 시대의 무역협정이 미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한 몫은 미미했다. 소비자들은 더 많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었으나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노동자 대부분의 임금은 정체됐고 어마어마한 양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1990년대 세계화의 열성적 지지자들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키면 중국의 정치 체계가 급격하게 민주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는 오만하고 잘못된 해석이었고 중국은 정치를 자유화하지 않고서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2016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세계화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감지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은 해당 국가의 자국 경제 통제력을 허약하게 만들고 금융위기를 촉발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몫이 줄어드는 데 기여했다. 또한 자본의 이동성이 높아지자 자본에 세금을 매기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금융화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세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촉발했던 것과 동일한 시장의 믿음으로부터 활성화됐다. 자본 시장이 국내외 구분 없이 제약을 받지 않고 운영되도록 허용할 때 비로소 자본이 가장 효율적으로 유도될 것이라는 믿음, 또한 그 덕분에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2000년대 초에 이미 포드는 자동차 판매보다 자동차 구입 자금을 위한 대출 상품 판매로 돈을 더 많이 벌었다. 산업화 시대에 기업이 지배하던 경제가 금융이 지배하는 경제로 자리를 내주었다. 클린턴 정부는 워런 버핏이 ‘대량살상의 금융 무기’라고 부른 파생상품을 규제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2008년 금융위기 시작.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금융화된 경제라는 새로운 유형의 경제는 생산적 활동으로 흐르는 자원을 비생산적 활동으로 돌려 경제를 파괴적 위험에 노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을 한껏 고조시켰다. 노동자 위기, 일자리 감소, 임금 정체, 불평등 심화.

오바마는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그들이 저질렀던 투기 폭주에 따른 비용을 일반 미국인들에게 전가했다. ①구제금융은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②구제금융은 월스트리트가 임직원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나눠줘도 된다고 허용했다. ③구제금융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스트리트에 그 어떤 책임을 묻지도 않고, 또 금융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일절 하지 않은 채 은행들에게 돈을 나눠줬다. → 국민 불신 강화

 

포퓰리즘적 반발

포퓰리즘의 전통적 두 노선 ①엘리트, 불평등, 무책임한 경제 권력에 맞서는 노선 ②토착주의,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 등과 은밀하게 거래하는 노선. 트럼프는 둘 다 품었다. 하지만 당선 후 트럼프는 월스트리트를 억제하는 어떤 조치도 시행하지 않았고 노동자 계급을 돕는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중산층 납세자의 세금을 감면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세금 감면 혜택 중 3분의 2가 기업에게 돌아갔다.

 

불평등과 과두정치: 체계 조작

개인의 자치 권한 박탈 현상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의 핵심이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금융 주도의 세계화가 낳은 소득과 부의 엄청난 불평등이 시민의식 차원에서 초래한 부정적인 결과들 가운데 하나다.

 

불평등과 능력주의: 승자와 패자

분열은 경제적 불평등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불평등과 함께 따라오는 성공을 바라보는 태도를 반영하기도 한다. 능력주의 발생. 그러나 기회가 전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가능. 20세기의 상당 기간 좌파 정당은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우파 정당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능력주의 시대에는 양상이 뒤바뀌었다.

 


 

2021년에 바이든이 취임하면서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움직임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바이든이 의회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결과 그의 야망 중에서 바이든 시대에 실현될 가망이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사회운동이 활기차게 전개되지 않는다면 미국인이 느끼는 불만은 더욱 쌓이고 높아져 미국을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불평등이 만연하고 팬데믹이 맹렬한 상황에서 시장의 마법은 이미 매력을 잃었다. 인류세 시대에 자치를 이루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재정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세계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 한때 자연의 불변적 진리로 보였던 것이 지금은 자치의 대상이 됐다. 필요성과 가능성 사이의 경계는 우리의 발아래서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온갖 힘들의 형태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심리적 열망은 이제 우리에게 여름이 지나면 과연 가을이 올 것인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또 판단하라고 말한다. (의심하고 생각하라)